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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6-21 20:19
건강한 공동체 2
 글쓴이 : 이행로
조회 : 24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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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발발한 지 72주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린 수많은 이들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는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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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교부 터툴리안은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깨달음이 있었고 감사와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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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감사와 감격의 본질인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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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위해 스스로 기꺼이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풍요와 다산의 신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가 대접받고 눈물을 그치는 곳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나를 부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통해 연약한 자를 위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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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자신이 받은 복에는 감사하면서 그 복을 나누는데는 인색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데는 한걸음 앞서고,
자기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고, 여자 목사 안수를 금지, 특권화하고
교회 안에 솔로몬의 산당을 세워가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세상에 나가서 부동산 투기를 하고,
부자에게는 세금을 깎아 주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공평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지지하고 추진합니다.
자녀들에게 좋은 스펙을 만들어 주기 위해 돈과 찬스를 사용하지만
기독교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함구합니다.
오히려 주일성수를 복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바알종교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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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날까요?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기 때문입니다.
대전에 있는 모 대형교회는 제자훈련이 끝나면 뷔페를 불러 교육 동기들을 대접하는 경쟁을 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목사의 제자가 되어 버린 교회의 모습에 둔감한 ~
바알과 아세라 신상이 가득한 곳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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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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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가난한 이를 도울 때 꼭 지켜야 할 원칙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제안해 봅니다)
교회 형제자매를 돕기 위한 전용 계좌를 교회 법인 이름으로 개설합니다.
교인들은 어려운 성도의 이름을 수신인으로하여 계좌송금을 합니다.
교회에서는 송금된 금액 전액을 그 성도에게 교회이름으로 송금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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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성도는 어떻게 선정할까요?
 교역자의 심방, 상담 등 다양한 형태로 어려운 가정을 선정하고
중보기도실에  명단과 현 상황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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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자들은 어려운 성도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하며
기도하되,  내색은 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소문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를 위해 마음을 모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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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도울까요?
가급적이면 중보기도실에 쓰여진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입니다.
다만, 시기를 정하여 게시하였을 때는 그 시기까지로 하는 것도 적절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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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올바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종교의식에 머무는 주일 정기모임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다시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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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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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가르치는 교회가 아니라 생각을 나누며 모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구원의 감격이 있다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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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교회, 동아리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교회
가난한 자가 위로받는 교회,
정의를 위해 고민하는 교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 동안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진정한 희생이 있어야
세상이 교회를 다시 바라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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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교회를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